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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속 CM병원
의사와 함께 읽는 문학
당뇨 명의로 잘 알려진
CM병원 내과 유형준 교수님 연재 안내
유담(柳潭) 유형준 교수는 1977년 서울의대를 졸업 했으며, 내분비내과(당뇨병)와 노인병 세부전문의다.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교수와 의료인문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2018년 2월 정년퇴임 한 뒤 현재 CM병원 내과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시인 겸 수필가로서 한국의사시인회 초대회장, 문학예술동인회장, 의사수필동인 박달회장, 문학청춘작가회 초대회장, 함춘문예회 회장, 한국의사수필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의학과 문학 접경연구소장’으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노화수정 클리닉’, ‘당뇨병 교육’, ‘당뇨병의 역사’, ‘당뇨병 알면 병이 아니다’ 등과 단독 시집으로 ‘가라앉지 못한 말들’, ‘두근거리는 지금’, 수필집 ‘늙음 오디세이아’ 외에 ‘글 짓는 의사들’, ‘포백 김대봉 문학선’ 등 다수가 있다.
출처 : 의학신문(https://www.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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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댈 때, 심장 박동 소리 너머로 들려오는 ‘삶의 고백’을 듣는다. 질병은 단순히 생물학적 기능의 오작동이 아니다. 평온하던 일상에 균열을 내며 침입한 낯선 손님이자, 때로는 나 자신조차 외면했던 내면의 심연을 마주하게 하는 거울이다.
청록파 시인으로 친숙한 조지훈(1920~1968)은 평생 기관지 확장증과 신장염 등의 만성질환에 시달리면서 「병(病)에게」를 썼다. 1968년 1월, 마흔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 4개월 전, 병상에서다.
죽음을 앞둔 그에게 병은 투쟁(鬪爭)의 대상이 아니라, 관조(觀照)와 대화의 상대다. 그래서 시인은 병을 ‘너’라고 부른다.
“어느덧 네가 내 몸에 들어온 지 삼십 년/ 네가 내 곁에 머물 때면 나는 내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했다.”
시인에게 병은 삼십 년 지기 친구다. 그저 허물없이 사귀는 친구가 아니라, ‘안간힘을 다해서라도’ 정중하게 대우하고 싶은 벗이다.
의학적으로 삼 개월 이상 장기간 지속되거나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병을 만성 질환이라 한다. ‘만성’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chronic(크로닉)’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Chronos)에 어원을 두고, 라틴어 크로니쿠스(chronicus)를 거쳐 크로닉이 되었다. 만성이란 말의 실체는 당장의 위중함보다 고질(痼疾)을 견뎌온 시간의 누적에 있다. 즉 시간이 쌓여도 해결되지 않고 곁에 머무는 상태가 바로 만성이다. 결국 만성질환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불운이 아니라, 삶의 기저음처럼 평생 함께 조율해야 할 운명적 선율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이 생소한 선율을 가다듬기 위해 의사가 진료기록부에 발병일과 질환의 성격을 기재하며 치료의 방향을 가늠하는 동안, 환자의 마음은 진료실 안팎을 오간다. 질병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을 키우고, 건강했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상실감은 깊은 슬픔이 된다. 또한 투병 과정의 고단함과 경제적 부담, 그리고 가족과 주변에 짐이 된다는 미안함은 환자를 스스로 고립의 벽 뒤로 숨게 만든다. 그러나 그 단절의 세월이 시인에게는 침잠의 시간이 되었을까. 어느새 삼십 년 쌓인 비일상(非日常)은 일상을 완전히 대체하여, 비일상의 고통이 일상의 평화를 대신하는 ‘맑은 거울’로 변한다.
“너는 내게서 평화를 뺏어 가고/ 대신에 고통의 맑은 거울 하나를 주었다.”
질병은 외부로 향해 있던 시선을 강제로 내면으로 돌려놓는다. 통증이라는 강렬한 신호가 뇌와 가슴을 자극하여, 존재와 생명의 유한성을 마치 거울 보듯 명료하게 나를 만나게 한다. 육신의 허약을 비추는 동시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내면의 결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거울 앞에 선 시인은, 비일상이 일상으로 바뀐 만성적 고통이 자신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더 곧게 세우는 길을 택한다.
그 치열한 자기 주시의 끝은 역설적으로 평온한 예견에 닿아 있다. 시의 말미에, 시인은 병과의 이별, 즉 죽음을 미리 짐작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공포나 비굴함이 없다. 오래 함께한 벗을 보내듯, 격을 갖추어 담담히 배웅하려 한다.
“이제 네가 갈 때가 되면/ 나는 너를 조용히 배웅하리라.”
병은 끝내 사라져야 할 적이 아니라, 나와 같은 시간을 헤쳐오고 있는 ‘정다운 너’였음을 수긍한다.
「병에게」는 나에게 묻는다. 너는 자신의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 고통을 삶을 허무는 무게로 둘 것인가, 아니면 존재를 더 깊고 단단하게 벼리는 시간의 숫돌로 삼을 것인가.
출처 : 의학신문(https://www.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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